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울 브라이트너 (문단 편집) == 국가대표 경력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aul-breitner-1.jpg|width=100%]]}}} || 소속팀에서의 활약으로 바로 [[헬무트 쇤]] 감독의 콜업을 받았고 최초의 메이저 대회 데뷔였던 [[UEFA 유로 1972|유로 1972]]에 출전했는데, 레프트백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굳건히 해냈던 브라이트너는 물론이고 특히 골잡이 [[게르트 뮐러]]의 득점력과 [[프란츠 베켄바워]]의 경기 조율로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벨기에]]와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소련]]을 꺾으며 우승을 차지한다. 본인은 토너먼트의 팀에 이름을 올린다. [[1974 FIFA 월드컵 서독|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역시 주전자리를 차지했다. 1차 조별 리그(16강)에서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오스트레일리아]]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사라진 팀#s-2|동독]],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칠레]]가 한 조가 되었는데, 동독에게 패배를 당하며 2승 1패 조 1위로 2차 조별 리그(8강)에 올라가게 된다. 브라이트너는 칠레전에서 전반 18분에 30m가 넘는 거리에서 중거리 슛으로 결승골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이것이 이 경기에서 서독이 기록한 단 두 개의 유효슛 중 하나였다. 희대의 수비수 [[엘리아스 피게로아]]가 버티고 있는 칠레 수비진은 이 날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였기 때문에, 만약 브라이트너가 골을 터뜨리지 않았다면 서독은 약체 칠레를 상대로 무승부를 기록할 뻔했다. 서독이 각성하며 3전 전승을 해내고 브라이트너도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유고슬라비아]] 전에서 다시 한번 멋있는 중거리슛으로 골을 만들어낸다. 결승은 당시 돌풍이었던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네덜란드]]와의 경기였다. 서로 둘다 [[토탈 풋볼]]과 리베로 시스템이라는 획기적인 전술을 들고 싸웠고 명경기를 만들어낸다. 휘슬이 불리고 1분 만에 [[요한 크루이프|크루이프]]는 [[페널티킥]]을 유도해내고, [[요한 네스켄스]]가 성공하며 한 점을 뒤지고 시작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3S3-ZSrNQI)]}}} || 그래도 서독은 힘을 내었고 [[페널티킥]] 찬스가 왔다. 브라이트너는 침착하게 성공시켜 동점을 만든다. [[베르티 포크츠]]는 [[요한 크루이프]]에게 초반 [[페널티킥]]을 내준 것 이외에는 크루이프를 마크하는 역할을 똑똑히 해냈고 크루이프는 그에게 고전한다. 또 전반 43분에는 [[게르트 뮐러]]가 터닝슛으로 마무리했고 이는 결승골이 되었고,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어 우승을 차지한다. 참고로 브라이트너는 레프트백으로 무려 7경기 3골을 넣었는데, [[UEFA 유로 1972|유로 1972]]보다 빛나는 활약을 한 브라이트너는 올스타팀에 선정된다. 이후 브라이트너는 오랫동안 대표팀 소집을 받지 못하다가[* 당시 유럽 축구 강국들의 국가대표팀 운영 방침은 상당히 보수적이었고 자국 리그 선수가 아니면 뽑질 않았는데, 브라이트너의 레알 이적으로 인해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국가대표와의 연을 끊게 된다. 브라이트너는 이후에도 이때의 이적과 국가대표 은퇴를 개인적인 결정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당시 서독 대표팀 감독이었던 [[유프 데어발]] 감독은 브라이트너의 대표팀 복귀를 유도하였고 브라이트너는 1975년 10월 그리스와의 [[UEFA 유로 1976|유로 1976]] 예선 경기 이후 거의 6년 만인 1981년 4월 오스트리아와의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1982 스페인 월드컵]] 예선 경기 국가대표팀에 복귀한다. 이미 포지션을 중앙 미드필더로 바뀐 뒤였고 서독은 베른트 푀르스터,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울리 슈틸리케]], [[호르스트 흐루베슈]], 또 역시 공격에는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와 듀오를 형성한다.[* 브라이트너와 루메니게의 조합을 '''브라이트니게'''라고 불렀다.] 서독은 [[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알제리]],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오스트리아]],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칠레]]를 상대로 2승 1패 조 1위로 1차 조별 리그(24강)를 통과한다.[* 여담으로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는 [[히혼의 수치]]로 불리는 승부조작을 했는데, 서독이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1골을 넣으며 오스트리아와 서독이 알제리와 승점은 같지만 골득실이 앞서는 상황이 되어 그 둘은 서로 공격을 안하고 볼을 돌리다 게임이 끝난다. 이 사건으로 인해 [[UEFA 유로 1984|유로 1984]]부터는 조별 예선의 마지막 경기는 동시에 진행 되었다.] 이때 서독의 몇몇 선수들은 부상에 시달리며 고생했는데, 그래도 꾸역꾸역 2차 조별 리그(12강)에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와는 비기고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스페인]]에게 2:1로 승리하며 4강에 오른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file2.instiz.net/6e5fa935a4650e005eaf1606400e5bd2.jpg|width=100%]]}}} || || '''1982 스페인 월드컵 서독 vs 프랑스의 서독팀 선발멤버''' || 4강에서는 [[미셸 플라티니]]의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를 상대로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고 [[하랄트 슈마허]]의 선방으로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결승에 오른다. 결승 상대는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는 [[파올로 로시]]가 이변을 일으키며 기세가 상당히 좋았고 서독은 그에 비해 안정적이였으나, 후반에 들어가면서 강력한 모습을 잃어갔다. 때문에 사람들의 예상은 이탈리아였다. 그리고 그에 맞게 이탈리아의 [[파올로 로시]]가 선제골, 뒤이어 [[마르코 타르델리]], [[알레산드로 알토벨리]]가 연속골을 넣었다. 브라이트너는 후반에 만회골을 넣지만 때는 너무 늦었고 이미 굳게 걸어잠군 골문은 열리지 않는다. 결국 3-1로 패배. 아쉬운 준우승이지만 브라이트너는 두 번의 월드컵 결승전에서 모두 골을 넣은 몇 안되는 선수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